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Subject (제목)   [이효수 경제칼럼] 하이닉스 딜레마의 교훈
필자   이효수 게재지   영남일보
게재지면   이효수경제칼럼 조회수   2231
게재일자   2002-04-26
Content (내용)
하이닉스 반도체 채권단은 22일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와 하이닉스 매각에 관한
양해각서(MOU)를 체결했다. 그런데 양해각서 내용이 공개되면서 소액주주와 노조
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고 심지어 채권단 내부에서도 헐값 매각 시비가 일고 있다.

양해각서의 내용을 보면 단순히 헐값 매각의 차원을 넘어서서 기업 인수합병(M&A)
의 상식에서 벗어난 독소 조항들을 내포하고 있다. 잔존법인 처리방안, 신규여신, 고
용보장, 지적 재산권, 조세문제, 우발 채무 문제 등 핵심쟁점 사항에 있어서 마이크
론의 이해가 일방적으로 반영됐다. 마이크론은 잔존법인(비메모리 부문)의 금융부
채 6조 5천억원 가운데 채권단이 회수 가능한 약 1조 3천억원을 제외한 5조 2천억원
전액을 탕감한 바탕에서 2억달러를 출자하는 것으로 돼 있다. 이것은 하이닉스의 잔
존법인 마저 부채탕감을 통해 클린컴퍼니로 만들어 경영권의 상당부문을 마이크론
에 넘긴다는것이다.

그리고, 하이닉스 메모리 부문이 마이크론으로 넘어가 새로운 법인으로 변신 하면
채권단은 15억달러를 마이크론 본사의 보증없이 신규 대출 해줘야 한다. 더욱 황당
한 것은 상대적으로 담보가치가 높은 지적 재산권은 담보에서 제외 됐다는 사실이
다. 이렇게 되면 이번 매각 과정에서 채권단은 약 5조원의 부채를 탕감하여 주고도
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약 2조원을 신규 대출해 주는 것이 된다.

더욱 한심한 협상내용은 하이닉스가 상당수 갖고 있는 지적재산권을 아무런 대가 없
이 마이크론에 제공하고 향후 지적 재산권 분쟁이 발생하면 그책임은 채권단과 하이
닉스 잔존법인이 모두 진다는 것이다.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(TI)는 마이크론에 D
램 사업을 매각 하면서 모든 지적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그대로 유지했다
는 사실을 고려하면 우리의 협상내용을 어떻게 이해 해야 하는가?

고용 승계의 합의 내용은 희극이다. 채권단은 2년간 85% 이상의 고용보장을 요구하
였으나, 양해각서의 합의 내용은 마이크론의 고용 제안을 받은 근로자의 85% 이상
이 회사에 남도록 회사가 고용동의를 받아줘야 한다고 돼 있다. 이것은 고용은 보장
할 수 없고 마이크론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핵심 인력은 책임지고 확보해 줘야 한
다는 것이다.

이러한 내용의 양해 각서가 체결되자 마이크론의 주가는 급등 하였고 하이닉스의 주
가는 급락했다. 이것은 하이닉스 매각 양해 각서가 얼마나 불평등하게 이루어졌는
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.

물론 양해 각서는 채권단 협의회와 하이닉스 및 마이크론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
효력이 발생되므로 아직까지 매각이 결정된 것은 아니다. 그러나 채권단 협의회와
하이닉스 이사회에서 양해 각서를 승인하지 않거나 재협상을 요구하면 마이크론 뿐
만 아니라 미국의 경제계와 언론 등이 국가신인도 및 신용등급 운운하면서 자못 위
협적 분위기를 형성할 것이 자명하다. 그러니 매각을 할 수도, 하지 않을 수도 없는
딜레마에 빠진 것이다. 우리는 제일은행, 대우자동차 매각 과정에서도 이와 유사한
딜레마에 봉착한 바 있다.

우리가 이러한 딜레마로부터 얻는 교훈은 경제 문제는 이해 당사자들이 철저하게 경
제논리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. 하이닉스의 비극은 관치 금융에 기저를 둔 담보대
출관행과 외환위기 직후 정부 여당이 강력하게 추진했던 빅딜에서 시작됐다. 정치권
이 은행과 기업의 의사결정에 강력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러한 경제시스템에서
는 정치 논리나 경제 외적 강제가 경제 논리를 왜곡시킬 위험성이 대단히 높다. 시장
금융 시스템과 신용대출 관행을 형성하여 기업의 상시 구조조정을 유도함으로써 기
업들이 체질을 스스로 강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야한다.

그리고 우리의 협상력과 협상기술이 지나치게 낮은 수준에 있어 이를 높일 수 있는
근본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. 미국 정부와 언론이 자국 기업의 협상에 절대적으로
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우리 정부는 그 동안 해외 매각 문제
가 제기될 때마다 매각을 서두르지 않으면 국가 신인도가 크게 위협받게 된다는 것
을 강조함으로써 오히려 우리의 협상력을 스스로 약화 시키는데 일조를 하여 왔다.
이러한 분위기에서 궁박판매가 이루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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